한영훈 목사 : 한영신학대학교 총장
마태복음 5장 1절부터 12절까지의 팔복을 읽노라면 무지개처럼 신비로운 여덟 가지 축복의 말씀을 만날 수 있다. 각 구절은 명사 ‘마카리오스’로
시작된다. 문장마다 헬라어 동사가 없으므로 ‘복 있도다!’라는 감탄사로 번역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첫 번째 축복과 마지막 여덟
번째 축복은 ‘천국’으로 마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5:3),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5:10). 이렇게 팔복의 시작과 마지막에 ‘천국’을 수미쌍관법으로 기록된 것은 일종의 히브리인들의 문학적
장치이다.
지금 예수님은 팔복을 통해 천국백성의 마음의 태도와 그들이 누릴 축복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를 새로운 축복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소개한 새로운 축복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팔복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여덟 가지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건강한 천국시민의 마음의 상태는 어떠할까? 심령이 가난하다. 자신의 죄인됨으로 인해 애통한다.
죄인에 대해 온유하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 곤경에 처한 자에게 긍휼을 베푼다. 흰 눈처럼 마음이 청결하다. 다툼과 분쟁을 변화시켜 화평케
한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 세상에 기쁨과 평안이 넘쳐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그러한 복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첫걸음이다.
고대의 역사가이며 문학가인 헤로도투스는 이
마카리오스를 오아시스에 비유했다. 오아시스는 지하수로 만들어져 사막의 한가운데서 시원한 생수를 제공하여 생명을 유지시켜 준다. 사하라 사막에는
전체 인구의 2/3가 오아시스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오아시스의 그늘진 곳에는 다양한 곡식들이 자란다. 그들이 주식으로 먹는
대추야자도 오아시스에서 자란다. 오아시스가 없다면 사막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오아시스를 가만히 생각해 보라. 황폐한
사막에서도 유일한 생명의 원천이 되고 있지 않은가! 열악한 환경과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기쁨과 평안을 주고 있지 않는가! 그런 사람이
되라.
사마리아 여인이 기쁨으로 마을로 달려간 것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생수를 공급받은 자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솟아나는 오아시스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 없어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신령한 오아시스를 가지고 있다. 광야 같은 나그네 삶을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생수를 공급하는 오아시스가 되라. 바로 당신이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인생의 안식처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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