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3일 금요일

성전 안의 장사꾼들

여기까지 이들 귀족목사님들의 개인기와 문제점들을 간단하게 검토해 보았습니다. 현재 전국의 지역 교회들은 물론 주요 교단의 총회나 노회 지도부의 상당수가 이들의 절대적인 입김 아래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모양이 된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들이 저질 정치꾼들처럼 돈봉투까지 뿌리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리 챙기기에 몰두해 온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렇게 해서 과거 예루살렘 성전에 장사꾼들이 북적거렸던 것처럼, 지금 한국교회 내에도 온갖 잡상인들이 기생충처럼 서식하게 된 것입니다.

어쨌든 간이 아주 크신 이 분들은 대부분 자신의 안위에만 몰두하고, 교인들이 영육으 로 말라가도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또한 사회 여론이 그들의 부정과 탐욕을 비난할 때는 적당히 연막을 쳐서 빠져나가거나, 그것도 잘 안되면 교인들을 동원하여 전면에 세우고 자신은 교회라는 성역의 울타리 뒤로 깊숙히 숨어 버리는 것이 일상적인 수법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귀족님들의 개인기가 너무 탁월해 한국교회가 거의 거덜나게 생겼습니 다. 심지어는 "한국교회는 이미 스스로 정화할 능력을 잃었다"라거나 "한국교회는 예 수를 버렸다"고 까지 단정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더구나 이들 상당수는 무슨 기연이라도 있었는지, 맨손으로도 바리새인 몇 명쯤은 순식간에 뺨을 치고 초상비로 날아 오를 정도로 엄청난 절정고수입니다. 양심에 철판을 삼겹으로 깔고 천사처럼 가장하여, 교인들을 속이며 등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심장이 약하고 내공이 약해 정말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종교 지도자인 동시에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정치 지도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큰 힘을 이용하여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여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늑대와 같은 자들입니다. 굶주리고 지친 백성들의 눈물과 탄식은 외면하면서, 자신들이 만든 유전과 규례는 철저히 지키라고 강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백성들이 자기들보다 예수를 따르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 장사꾼들을 내어 쫓는 것도 보았습니다. 자신들의 밥그릇에 금가는 소리가 들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이상 예수를 따 르지 못 하도록 그 분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지금 주위를 살펴보면 한국교회의 부패와 탐욕이 그때보다 못 하다고 감히 말할 수 없 습니다. 한국교회의 무법자, 귀족 목사님들이 그래도 바리새인들보다는 더 의롭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바리새인을 뺨치는 내공으로 한국교회를 거덜내고 계신 것이 아닌가요. 이들은 예수를 따르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유다처럼 예수를 팔고 있는 것일까요.

이들의 귀에도 영육으로 메말라버린 저 양들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릴까요. 이들의 눈에도 저 양들의 목이 꺾여 늑대에게 찟겨지고 있는 모습이 보일까요. 그리고 이들의 양심에도 저 양들의 슬픈 눈망울에서 나오는 분노와 절규가 느껴질까요.

하도 답답해서 묻고 있지만, 결코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책 어디에도 바리새인들이 회개하고 돌아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외쳤어도 듣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세리와 창기들은 돌아왔으나, 그들은 성경을 손에 들고도 끝까지 거역하였습니다. 차라리 개 귀에 명심 보감을 들려주는 것이 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죽해야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셨겠습니까.

그러다가 결국에는 불과 몇 십년 뒤인 AD 70년에 후일 황제가 된 티투스 장군의 강력한 로마 군단에 의해 처절하게 짓밣히고 찟겨져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역사의 뒤안 길로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물론 그들이 자랑하던 큰 건물, 헤롯성전도 예수님이 예언하신 그대로 완전히 파괴되어 이때 함께 무너졌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성읍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근 100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비참하게 몰살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토록 슬프게 무너진 거대한 헤롯성전을 생각하며, 오늘날 오로지 큰 건물, 큰 무리, 그리고 큰 사업을 추구하며 교회 대형화에 눈이 먼 한국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을 바라보니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이제 결론을 맺기 전에, 존경하는 신현우 교수의 짧은글을 먼저 인용하고자 합니다.

<개는 없고 양반들만 있으니>

아직 잠들지 않은 그리고 결코 잠들 수 없는 깨어 있는 목회자들에게 이 글을바칩니다.

나는 차라리 개같은 목사가 되렵니다.

경건을 보수의 울타리에 가두고 학문을 교리의 울타리에 가두고 실천을 교회의 울타리에 가두고 그리고 나면 우리는 감옥에 갇힐 겁니다.

역사의 암울한 시기에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못한 교단에서 한 발작 벗어나는 것이 이리도 힘드는 일까요?

성경을 교리로 난도질하는 인본주의적 인습에서 혁명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무릎꿇는 길로 가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일일까요?

목사님들은 모를겁니다. 그래서 저도 모를겁니다.

교회를 보며 갑갑해 하는 일반 성도들의 마음을, 이리를 보고도 짖지 못하는 개와 같은 목사들을 보며 물려죽으며 분통이 터져가는 양들의 마음을 ...

예수님을 잃은 중세카톨릭이 부패하였듯이 개혁정신을 잃은 개혁교회가 썪고 있는 것을 보며 혹시 우리가 양들을 지키는 개가 아니고 이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나운 개가 몇 마리만 더 있어도 좀 덜 할 터인데 개는 없고 양반들만 있으니 양들이 죽는 것이 아닌지요. 소금은 없고 설탕만 있으니 썩는 것이 아닌지요.

그래서 결심해 봅니다. 나는 개같은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설탕보다는 소금을 뿌리는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거룩한 목사님들은 모르실 겁니다. 왜 제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왜 차라리 개같은 목사가 되려고 하는지 ...

양들 가운데 있다보면 우리는 양같은 목사가 되어 양을 바로 인도하지 못하는 거룩한 양같은 목사가 되거나, 이리 같은 목사가 되어 양을 잡아먹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같은 목사가 되어야 할 겁니다.

점잖은 목사님들은 못 들으실 것입니다. 이리를 만난 저 성도들의 아우성을 ...

천사들의 찬양 소리만 들리실 터이니 ...

저는 이리를 물어뜯는 개같은 목사가 되렵니다.

- 신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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