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3일 금요일

병신도(病信徒)를 깨운다 ①

허상, 허수, 허세가 만든 최고의 작품

최근 필자는 몇 분의 형제님들로부터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에서 겪고 있는 절박한 어 려움을 호소하는 메일들을 받았습니다. 실명을 밝히신 그 분들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내용은 담임목사님들의 탐욕적인 행태에 대한 신랄한 고발이었고, 그 다 음으로는 그런 목사님들에게 무조건 맹종하고 순응하는 장로님들과 제직들에 대한 절망감과 탄식이 공통적으로 많았습니다.

그 형제님들이 장로님들이나 주요 어른들을 만나 "교회를 이렇게 개인 회사처럼 운영하는 것이 옳지 않으니, 담임목사님께 건의하여 이를 시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꺼내면, 거의 다 완고하게 거절하거나 직접 가서 말해보라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마치 꽉 막힌 절벽처럼 교회의 중직을 맡은 이 분들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물론 담임목사님에게 가서 직접 건의를 하면, 순종을 강요하거나 아니면 "내 교회이니, 싫으면 네가 떠나라"는 식의 답변이 거의 공식이었다고 합니다.

목사에게 맹종하는 교인들
심지어 교인수가 350여 명 정도인 어느 지방 소읍에 있는 교회에서는 목사가 연봉을 1억 원이나 받고 있으며, 게다가 일반 교인들은 타기 어려운 최고급차를 타고 부흥강사까지 하며 수시로 돌아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소읍에서 연봉 1억이 중류 가정의 수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교회 운영면에서도 마치 목사 개인 사업체처럼 왕같은 권력 체제가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그 교회 제직들과 교인들의 순응적인 협력과 지원이 없이는 가능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비단 이 교회 뿐만이 아니라, 전국에 있는 수많은 다른 교회에서도 부패한 목사님들이 개인기를 마음껏 발휘하며 부정을 행하고, 활개칠 수 있도록 화려한 멍석을 깔아 주고 있는 충성된 일꾼들이 바로 이런 우직한 분들이 아닐까요. 이렇게 담임목사님께 무비 판적으로 맹종하는 제직들과 교인들이 바로 이 글의 주제라는 것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지난 수 십년 간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사에 보기 드믄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어 냈습니다. 이제는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 교회가 줄줄히 늘어서고, 아울러 지방의 농어촌 지역이나 섬마을에 이르기까지 어디를 가도 교회가 없는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교회와 교인수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심각하게 우려하는 문제는 이런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인 성장이 제대로 뒷받침이 되지 못한 데에 있습니다. 그동안의 고속성장 과정에서 한국 개신교는 비판자들로부터 세가지의 명예스럽지 못한 별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이름이 '개독교'이며, 다음은 목사님들에게 주어진 '먹사'라는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신도들에게 선사된 '병신도'라는 이름입니다. 이것 또한 세계 교회사에 보기 드믄 수치스러운 이름들이라고 할 수 있으니, 하여튼 한국 사람들은 평범한 것은 절대 못 참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왜 개독교와 먹사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이미 널리 잘 알려진 사실이기에 생략하고, 이 글에서는 이 병신도라는 말에 관심을 가지고 몇가지 내용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이 '병신도'라는 말은 사실 잘 아시는 대로 우리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되는 비속한 단어입니다. 그 말을 쓰는 자체로 다른 분들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비판자들이 이를 사용한 것은 '평신도'와 발음이 매우 비슷한데 다가, 나름대로 '병이 들어 잘못된 신도의 상태'를 잘 표현한다고 생각해서 채용한 속 어로 이해됩니다. 어떤 분들은 빈병같이 속이 비었다는 의미로 한자어 '甁信徒'로 쓰 기도 하는 데, 그것도 역시 일리가 있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필자도 이 글에서 불가피하게 '병신도'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는 결코 어떤 특정인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의미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어느 정도 일반화되어 알려지고 있는 용어이기에 부득이 쓰고 있음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병신도를 키운 사람들
그러면 어떻게 평신도가 병신도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요. 구태여 왜 이런 오명을 갖게 되었을까요. 필자는 그 답을 필연적으로 먹사님들에게서 찾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들을 키운 사람들이 먹사님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먹사'란 보통의 건전한 목사님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철밥통으로 생각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목사님들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귀족 목사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평신도들이 깨어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많이 알고 제대로 깨달을수록, 자신들의 비지니스에 더 큰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중세 교회 성직자들이 신도들로부터 성경을 빼앗아 못 읽게 만든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어떤 시대에는 단순히 성경을 몰래 읽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단으로 몰려 처형을 당했다니, 정말 인간의 간악함과 그 무지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절망감마저 듭니다.

하여튼 먹사님들이 바라는 최고의 교인이란 자신들의 말에 잘 따르고 적당히 똑똑한 병신도입니다. 고려대학교 김인수 교수는 이를 잘 지적하여 "목회자에게 의존하도록 성도를 양육하는 것은 목회자에게는 안정적이고 좋을지 모르지만, 성도는 병신도가 되 고 하나님의 교회는 병들어 갈 것이다"라고 이미 한국교회에 단호하게 경고한 바가 있 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먹사님들은 기본적으로 교회를 자신의 멋진 비지니스로 알기 때문에, 교회의 운영이나 목회의 초점이 항상 양떼의 양적 성장과 털깍기에 맞추어져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양들의 영혼에는 사실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양들의 숫자와 몸집만 크게 키워 철따라 털을 깍아 수입을 올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설교와 교회 프로그램의 내용이 매우 다양한 것같고 제법 신앙적인 것처럼 보 이나, 결국은 '모여라, 돈 내라, 집 짓자!'로 귀결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들의 교회 에서는 선교도 구제도 봉사도 다 결국은 비지니스 확대를 위한 멋진 명분이며 도구일 뿐입니다.

만일 어느 교회가 도둑질이나 악행을 가르친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그 교회에 출석을 하겠습니까. 우리의 영리한 먹사님들도 이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압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경건하며 능력있는 성직자처럼 가장하고, 교인들에게 다양한 신앙 프로 그램과 그들을 크게 감동시킬만한 그럴 듯한 사업들을 제시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들이 거창한 해외선교, 예배당 건축, 총동원 전도, 미자립 교회 돕기, 불우이웃 돕기, 그리고 기타 봉사 활동들입니다. 어찌보면 그 자체로는 비난받을 일이 없는 정상적인 사업들입니다. 그리고는 현란하고 멋진 화술로 때로는 눈물까지 글썽이 며 교인들의 순수한 신앙심에 호소합니다, "저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주님을 향한 사 랑과 열정으로 우리 한번 해보자! 순교적 각오로 나가자!". 그런 후에 양념으로 세계가 어쩌고 민족이 저쩌고 하며 헛바람을 조금만 더 넣어주면, 대부분의 순진한 교인들은 가슴이 뜨거워지며 거기서 게임이 끝나버리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참으로 유치하고 속이 빤히 보이는 수법같지만, 소위 믿음이 좋다는 교인들일수록 더 잘 넘어 갑니다. 그 마음이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교회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매우 지각있는 극히 일부 교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도들은 자연스레 목사에게 맹종하는 병신도의 수준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얼핏 들어도 크게 틀린 것 같지 않은 말인데다가 집단적으로 하도 자주 최면을 거니, 나중에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담임목사의 말을 따르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먹사님들은 인기 연기자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설교도 매끄럽게 잘 하시기 때문에, 일반 신도들이 그를 참된 목사인지 아닌지 구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처음에는 순수하게 잘하다가, 배가 부르고 명예를 조금 얻더니 변절하는 목사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니 근자에 들어서는 적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상당수인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수 십년 간 편안히 호의호식을 즐기시더니 아예 단체로 동맥경화라도 걸린 듯, 양심이 뻣뻣하게 굳어져서 진리마저 버린 변절자들을 우리는 한국교회내에서 날마다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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