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피!" "아냐, 젠피야." "산초잖아." "제피가 맞아."
추어탕집에만 가면 흑갈색 가루 때문에 한바탕 혼란이 인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초피가 맞다. '조피', '젠피' '제피' 등은 사투리이다. 그러면 '산초'는? 산초는 또 다른
식물이다.
추어탕에 넣는 향신료 '초피'는 초피나무 열매다. 한반도 남부 지방과 동해 연안에 자생한다. 키가 3m 정도 자라고
가지에 가시가 있다. 5~6월에 꽃이 피고 8~9월에 열매를 맺는다. 향은 입안에서 '화~' 하고 터진다. 혀를 얼얼하게 하는 것은 후추와
비슷하나 후추와 달리 신맛이 강하다.
'초피'와 많이들 헷갈리는 '산초'는 산초나무 열매다. 산초나무는 중부 내륙 지방에 자생한다.
초피와 생김새는 비슷하나 그 맛과 쓰임은 완전히 다르다. 산초는 얼얼하지도 시지도 않다. 향은 비누 냄새 비슷하다. 무엇보다도 산초는 향신료로
쓰지 않는다. 열매의 씨앗에서 기름을 짠다.
초피와 산초는 분명히 다른 식물인데도 많은 사람이 초피를 산초라고 부르고, 산초를 초피처럼 쓴다.
추어탕 전문점에서 추어탕에다
산초 가루를 털어 넣는 황망한 일도 벌어진다. 이러한 혼란은 예전엔 없었다.
초피와 산초의 자생지가 다르기 때문에 초피는 남부
지방에서 향신료로, 산초는 중부지방에서는 기름으로 썼다. 초피와 산초를 혼동하게 된 건 일본의 영향이다.
한국의 초피를 일본에서는
'산쇼(山椒·산초)'라 한다. '산쇼'는 일본 음식에 약방 감초처럼 쓰이는 향신료이다.
우동집 식탁에 놓여 있는 시치미(七味)에도
이게 들어 있다. 생선회 곁에, 국물 음식 위에 '산쇼(초피)'의 어린잎을 올리기도 한다.
일본에서 '산쇼'를 접한 사람들이
한국의 초피를 '산초'라 부르는 일이 잦아졌고, 심지어 초피 대신 '산초'를 쓰는 일까지 생긴 것이다. 언어의 혼란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제발 추어탕집 식탁에서 비누 냄새 나는 산초를 만나는 일만은 막고 싶다.
최근 초피에 또 하나 혼란이 더해지고 있다. 이번에는
'중국발'이다. 쓰촨 요리에 쓰이는 '화자오(花椒·화초)'다. 훠궈(火鍋·중국식 샤부샤부) 등 쓰촨 요리가 근래에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인들
사이에서 차츰 익숙해지고 있는 이름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화자오'를 '중국 산초'라고 설명한다. 그러니 '화자오'는 한국의
초피와 거의 같은 식물이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 초피보다 신맛이 덜하다는 것. 얼얼한 맛에서는 동급이다.
혼란을 막자면 이렇게
기억하면 된다. '한국의 초피(椒皮), 일본의 산쇼(山椒), 중국의 화자오(花椒)는 같은 향신료다. 그리고 한국의 산초는 향신료가
아니다.'
'초피'의 영어 이름은 'Sichuan pepper(쓰촨 후추)'다. 쓰촨 요리를 통해 서양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초피'는 또 'Chinese pepper(중국 후추)'라고도 하며, 일식을 통해서도 전파되면서 'Japanese pepper(일본 후추)'란
이름도 얻었다.
동양 특산인 데다 후추에는 없는 독특한 향을 지니고 있어 서양에서는 '동양의 신비한 후추'로 여기기도 한다.
'Korean pepper(한국 후추)'는 없느냐고? 이 이름으로 구글링을 하면 고추만 검색된다. 이마저도 한국인이 짧은 영어 솜씨로 올린
것이다.
참 묘하게도 한국인은 초피를 꺼린다. 남부의 일부 지방에서, 그것도 토속적 입맛을 지닌 사람들이 추어탕에나 넣어 먹는
이상야릇한 열매 정도로 여긴다. 그러니 그 이름 따위에 관심이 갈 리가 없다.
그런데 일본을 보니 '산쇼'라는 것이 있고, 그것참
묘하다 싶어 '산초, 산초' 하다가 이제는 중국 쓰촨 요리 먹다 '화자오'를 발견하고선 '중국 산초'라 하고…
매년 늦여름이면 일본
상인들이 지리산에 온다. 초피를 수매(收買)하기 위해서이다. 1㎏에 6000원 정도의 헐값에 거둬 간다.
한국인이 하찮게 여기니
쌀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이 지리산 초피를 최상품으로 여긴다. 신맛이 특히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러든 말든, 우리는 그게
초피인지 산초인지 분간도 못 하고 있으니…
댓글 없음:
댓글 쓰기